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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 마음공부 ] 미국맘의 현명한 하루살이

현재 어떤 공간에서 지내고 있나요?

봄치즈 2020. 7. 21. 21:40

 

오늘따라 유난히 눈이 빨리 떠졌습니다. 그럴 때 있나요? 생각은 너무나 많은데 정리가 안돼서 도통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때. 생각의 실마리가 뭔가 명쾌한 듯했다가도 다시 보면 엉켜있는 것 같고, 내가 잘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가도 순간 이 길이 맞나 싶을 때. 마치 내가 지금 이 곳에 앉아 있음에도 내가 제대로 앉아 있나? 하는 느낌.

 

가끔 이런 때가 오면 명상을 해볼려고 앉아도 잡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서 그걸 그냥 흘려보내느라 바쁩니다. 아직도 초급자 수준이라 그렇겠죠? 5분 만에 매트에서 일어나 커피를 내렸습니다.

 

이럴 때면 하는 일이 있어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책상에 옆에서 쌓여있는 책 들 중 하나를 꺼냅니다. 그리고 쓰을 훑다가 눈에 딱 띄는 단어를 포착, 그것을 시작으로 글을 써봅니다. 그러면 신기하게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수많은 것들 중 하나의 길을 조금을 파악할 수 있어요. 

 

옆에 있는 책 한권을 들어 후루룩 넘기다 멈춥니다. 눈에 뜨이는 한 단어.

 

'꿈꾸는 공간'이네요. 

 

갑자기 어린 시절 보았던 소의 눈이 떠오르고.... 얼른 노트를 꺼내 생각들을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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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라는 단어에 갑자기 어린 시절 보았던 소의 눈의 떠오른다. 초등학교 시절, 항상 내려가던 시골에서 매일 만났던 소의 예쁜 눈. 우리 가족에게 여름 방학은 곧 강원도 동해 할머니 댁으로 내려가는 날이다. 지금이야 족히 3시간이면 도달할 거리지만 당시에는 기본 5시간. 멀고 먼 그 여정이 설렘으로 가득하다.

할머니 댁에 도착하면 짐을 던져놓고 할머니 댁 점검에 나선다. 지난 겨울 방학 때 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았던 썰매와 즐겨 탔던 리어카는 잘 있는지. 앞마당의 석류와 복숭아나무는 얼마큼 컸는지. 이후 꼭 들는 곳이 있다. 바로 할머니 댁 옆 집, 노 할머니 댁. 백발에 쪽진 머리를 하고 항상 당신이 직접 베틀로 짜신 삼베옷을 입고 계셨던 나이 많으신 할머니를 그냥 그렇게 불렀다. 노 할머니라고. 

 

"안녕하세요! 주연이 왔어요."

 

마치 어제 왔던 양 인사를 하며 항상 열려져 있는 대문으로 들어가 인사를 드린다. 창호지 입혀진 문을 열고 반갑게 맞아주시는 노 할머니.

 

"어여 와. 내려오느라 고생 많았다" 

 

귓 등으로 흘려보내가 내가 뛰어가는 곳은 바로 소 외양간이다. 

 

"제가 여물 줘도 되죠?"

 

물론 대답은 '해도 된다' 일 테니 듣지도 않고 외양간으로 간다. 오늘부터 소여물 주는 건 내 담당. 

풀을 주면 오물오물 되새김질을 하며 얼마나 잘 먹는지. 평소 성격이 급한 편이면서도 한 움큼의 풀들을 삼키고 내가 또 주기까지 '꽤 걸리는 듯한' 그 시간이 나에겐 즐거웠다. 그러면서 소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얘기도 하고. 그때 바라본 예쁜 소의 눈은 여전히 생생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소의 눈과 함께 동해 바다와 계곡, 아빠와 함께 타고 다녔던 산 들이 떠오른다. 어릴 적 나의 공간을 생각해보면 이렇듯 강원도 동해를 빼놓을 수 없다. 그야말로 전원 속 시골 생활. 바빠진 중학교 들어가면서도 방학 때 2주는 동해에서 보냈으니 나의 10대 삶의 공간에서는 '시골'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다.

 

물론 고등학교 시절의 대부분 공간은 학교, 독서실, 그리고 집. 당시에는 학교 자율학습을 밤 10시까지 하는 시절이었으니. 이후 새벽 두 시까지 독서실에서 보내고 독서실 차를 타고 집에 와 씻고 자면 다음 날. 그 역시 지금 생각하면 추억을 공간이긴 하다. 독서실 아저씨게 부탁해서 행여나 엎어져 자고 있으면 어깨를 쳐서 깨워주시고, 겨울이면 몰래 군고구마도 떠오르고. 

 

그러나 20대에는 그야말로 도시 소녀.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고, 배우고 싶은 것도 너무 많고. 갇혀있던 고등학교 시절을 보상받기라도 한 듯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발발거리며 많이 돌아다닌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갔던 곳은 대학로 마로니에 공연장들. 중학교 때부터 용돈을 모으면 뮤지컬 VIP를 사서 가서 보곤 했다. 무대의 연출, 노래, 연기 다 좋았지만 무엇보다 내 심장을 울렸던 것 무대 위의 연기자들을 보면 정말 '살아있는 것'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들의 숨소리, 땀방울 보고 있으면 그들의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어온 몸에 닭살이 돋았다. 대학교에서 접하기 시작한 소극장 공연들은 무대와 더욱 가까이 갈 수 있으니 그 감동이 더 컸다. 그 간 읽었던 문학 작품들의 공연들을 볼 때면 더더욱 즐거웠으니. 그 당시에는 더더욱 소극장 공연은 여건이 어려워 사실 5명 이내의 관객만 있었을 때도 많았다. 이럴 때면 배우들과 공연이 끝나고 무대에 앉아 같이 맥주에 오징어, 과자를 먹으며 얘기를 나누기도 했으니 그때의 소중한 기억들을 어찌 잊으리. 

 

이와 함께 직장 생활에 박차를 가했던 20-30대의 나의 주무대는 서소문, 청담동, 가로수길. 그야말로 트렌드 메카였다. 이때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나와 다른 그들의 유연한 생각들에 항상 자극을 받았다. 아마도 이 때 내가 나를 가뒀던 그 많은 틀들이 깨질 수 있었던 듯하다. 세상이 돌아가게 하는 가장 '쌈박한' 최신의 것들을 접했던 그때의 시절에 나는 가장 많이 자극을 받고 그 안에서 가장 많이 움직였던 것 같다.

 

동적인 에너지가 넘쳐나던 20-30 때 아빠께서 종종 '전원생활'에 대한 낭만을 이야기했을 때는 살짝 '지루한 삶'처럼 느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일 년에 세네 번은 동해 바다를 보러 갔으니 도시 라이프가 주를 이루었음에도 '맘먹으면 갈 수 있었던' 공간에는 항상 시골이 있었다.   

 

결혼 이후, 맨해튼에서 그야말로 최고의 공연 문화를 몇 달간 마음껏 즐기다 출산과 함께 조금 더 조용한 지금의 이곳 뉴저지로 오게 됐다. 현재 글을 쓰고 있는 뒷 마당을 찬찬히 둘러본다. 새소리, 나무 위로 올라가는 청솔몰. 마치 연어가 거슬러 올라간 듯 지금의 나는 마치 어릴 적 할머니 댁의 느낌과 '비스끄무레한' 곳에서 살고 있는 듯한다. 물론 조금만 나가면 맨하탄이지만 내가 주로 있는 집을 보니 시골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그럼에도 이제껏 전반적인 나의 삶의 무대를 보면 '시골'과 '도시'가 어느 부분 중첩되어 있었다. 어릴 땐 시골에 조금 더 가깝게, 20-30대에는 도시가 그 주 무대였지만 다른 한 곳은 항상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그렇게 멀리 있진 않았다.  그러면서 내 공간이 지루해지고, 그 안에서 피로해지면 언제든 다른 공간을 넘나들며 나를 충전하고 힐링시켰다.

 

 

"한 곳에 머무르지 말고 항상 그 경계 안에서 움직여라" 

"움직여야만 살아있는 것이고, 진정한 나를 찾게 된다"

 

문득, 최진석 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그와 함께 요즘 삶의 주무대가 된 가상의 다른 공간이 떠오른다. '시골', '도시'로 카테고리즈 할 수 없는

 

 디지털 온라인 공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공간이다. 그것을 주 무대로 삼지는 못할지언정 그것의 트렌드에는 최소한 발맞춰 갈 수 있는 것이 '이 시대의 교양'이 되고 있다.

물론 자기의 의지에 따라 충분히 나의 삶의 무대 밖에서 젖혀 놓아도 된다. 

 

그러나 이제껏 그래 왔듯이 나는 여러 공간이 겹치는 나만의 공간도 새로이 만들고 싶다. 그 안에서 내 영역이 있어야 비로소 그 시기, 시대에 맞는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많이 드는 생각들의 큰 범주를 보니 바로 이 디지털 세상에서 나를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었던 것 같다.

 

나는 충분히 인문학적인 사람이다.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그래 왔듯이 '그러한 나'를 이 공간에서도 존재하게끔 만들고 싶다. 문제는 대신 이 공간의 다른 점은 그렇게 되기 위한 기본적인 기술에 대한 익힘, 그리고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써내려 가니 많은 고민들의 맥락이 잡히는 느낌. 난 그러한 익힘으로의 필요성을 이해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경계에 있는 듯하다. 맥락이 잡히니 조금은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다. ^^

 

그러고 보면 나라는 사람도 '참 나를 사랑하는 존재구나'.  

 

혹자는 '다 아는 얘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듣는 것과 내가 깨달은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거라 포장해본다.

 

'왜 굳이 고민거리를 만드냐'하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의 삶의 의미를 다져가는 것'이라고 혼잣말로 토닥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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