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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교육] 난 줏대 있는 어른?

봄치즈 2020. 8. 20. 02:02

팔랑귀’ ‘줏대 없는 사람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여러 생각들이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부정적인 말'로 생각하죠. 자신의 생각없이 다른 사람들의 말에 쉽게 호응하고 나아가 쉽게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이죠.

 

그렇다면 자신만이 생각하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있나요? 거창하게 삶에 대한 신조까지 가진 아니더라도 자신이 일하는 분야나 어느 소소한 부분에 있어서 대부분 갖고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요리, 청소, 공부하는 방법 ). “OO이렇게 하는건 아니지” “ 방법으로 해야지~” 등 자신만의 고집이 있는 부분이 있을거예요.

 

그렇다면,

혹시 그러한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한 적이 있나요?

강요? 사실 물음을 처음 받았을 그렇지 않다 확신했었습니다. 글을 이전에 보셨던 분은 아시겠지만다른 사람에게 주는 조언아닌 조언 간섭 오지랖으로 수도 있음을 알기에 왠만해서는 조언을 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보세요. 부모님들, 친척들, 아이 친구 부모님들, 친구들..그런데 마지막에서 주춤하게 됩니다.

바로 아이들’.

 

혹시 주변에서 가장 약자가 누가 있을까 떠올려보세요. 결혼 안하신 분들은 후배, 조카, 학생들을 떠올릴 있겠죠. 혹시 그들에게 나만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지 않았나요?

  

어느 강의에서 들었던 내용이 떠오르네요. ‘폭언, 폭행이야말로 가장 약자에게 내려간다고’.  

칼 만큼 강한 것이 말과 글이라고 하는데 혹시 내가 아이들에게 말했던 ‘내가 옳다고 믿었던 생각들’ 이  ‘폭행’으로 작용되지는 않았나.

 

오늘 오전 읽은 중의 글귀가 마음에 와닿습니다.

“아티스트의 싹을 자르는 것은 바로 지식인들의 권위적인 지식이다”

 

그러면서 어른들, 부모라는 위치만으로도 우리도 아이들에게는 권위자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개월전 화자가 되었던 한국의 토론 방송이 떠오르더라고요. 곳에 나왔던 패널이 공중파 미디어의 공정한 보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논쟁을 하다 마지막에 가서는 열을 내면서 “왜냐하면 내가 보면서 그렇게 느끼거든요.”라는 발언을 하더군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이 분야의 권위자이니 자신의 말이 맞다는 뉘앙스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진짜 권위자 일까?

누가 인정한 귄위자 인가요?

그렇다면 권위자들이 하는 말은 맞는 건가요?

 

결국 내가 하는 말이니까 맞아라는 말이잖아요. 이 말을 아이들간의 말싸움에 적용해보면 실로 바보같은 상황이죠.

그런데 주변에서 보면 많이배울수록, 똑똑한학자일수록 이런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자신이 경험치가 많던, 그에 대해서 많은 공부를 했던 시대가 변하고 현실 상황이 변하듯이 권위자들의 이론의 진위여부도 달라집니다..

 

엄마 그렇게 해야해?"

"이렇게 해도 있지.”

엄마 내가 해보게 시간을 주면 안돼요? 내가 생각좀 해보게.”

나는 방법이 좋아. 시간이 오래 걸려도.”

 

사춘기에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지 원래부터 자기 의견이 뚜렷한 딸이 요즘 그야말로 말대답 장난이 아닙니다. 게다가 집콕 생활에 지쳤는지 피곤한 날이면 한마디 한마디에 엄청 짜증날 때가 많아요.

엄마가 말하면 말대답은 커녕 라고 해야하는 우리 때와는 너무 상황이죠.

 

아니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하라면 하지 !’

 

정말 이 말이 목까지 올라옵니다. 저 역시 구시대 엄마인가 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찬찬히 생각해보면 물론태도에 있어서 무례함이 있었다면 문제겠지만 사실 내용면에서 보면문제가 될 게 없어요. 그야말로 자기 의견이거든요. 

 

오늘 창조성 관련된 글들을 보면서 아이를 바라봤던 나의 권위적인 말들에 대해서 떠올려봅니다.

당연히 OO 해야되지 않냐 나만의 이론.

 

가장 많은 창조성이 발산되는 기간이 어린 시절인데 상당부분 어린 시절, 어른들과 권위자들의 말에 패배감을 느끼고 자신의 창조성을 포기한다고 하네요.

때의 엉뚱한 발상이나 창조성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 텐데 말이죠.

 

“모든 사람의 내면의 아티스트들은 진실한 비판에는 상처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해로운 비판은 외도야 어찌됐든 진정한 핵심을 담고 있지 않다. 그것은 그럴듯한 비방과 반박하기 어려운 모호함으로 표현되어있다.”  

 

진실된 비판은 하되 마음의 패배감을 주는 비난을 하진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반대로 내가 권위자로부터 이러한 비판이나 비난을 받았을 때 어떻게 해야할까요?

 

1) 당연히,진정한 비판은 소중한 의견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만약 필요한 비판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패배감을 맛보게 된다면?

“그 패배감으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을 무엇인가?”로 돌려서 생각하는 습관을 키워야 합니다. 나중에는 그 패배감이 나를 승리하게 해줄 것이니까요. 

 

2) 그러나 비난이라면?

그것을 무시하는 대범함, 나의 내면을 보호하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아이의 말대꾸에 대입해봅니다.

아이가 나에게 강하게 반박했을 ,

‘딸아이 또한 자기의 것을 보호하기 위해서용기를 발휘해 말하는 것이었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표현을 해준게 너무 고맙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물론 논의가 되어야할 주제라면 토론으로 이어가야겠죠.

 

지난 주말 이웃 엄마가 자긴 너무 팔랑귀여서 줏대가 없다 푸념을 하더라고요. 너무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듣고 그 말에 흔들린다고요.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줏대 없이’ 대하는 어른이 되어보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스스로가 정한 엄마로서의 미션.

(아마도 사춘기 시절의 계속되는 미션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아이가 얼토당치 않는 나름의 해결책을 말할 아래처럼 말하고 기다려 주기.

 

그래? 들어보니 그런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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